케이 아카기 인터뷰 (2025년 11월)
케이 아카기 (Kei Akagi, ケイ 赤城, 1953~)
- 재즈 피아노 연주자, 작곡자 겸 교육자
- 80년대 마일스 데이비스, 앨런 홀즈워스, 알 디 메올라, 프랭크 갬발리, 아이어토 모레이라의 사이드맨으로 활동
- 긴 시간에 걸쳐 지금까지 거쳐온 아티스트와의 일화들을 소개함
- 지금까지 본 마일스 성대모사 중 가장 싱크로율이 높은 것 같기도 . .
1. 근황 (2025년 11월)
최근 앨범 및 활동 경과
- 2019년 리더작인 ‘Aqua Puzzle’을 발표한 지 약 6년이 지남
- 팬데믹 이후 삶과 음악 활동을 다시 정상화하는 과정을 거쳐왔음
새 앨범 출시 및 녹음 계획
- 2026년 중반 출시를 목표로 새로운 앨범을 준비 중
- 팬데믹 직전 결성하여 최근 2년간 집중적으로 합을 맞춰온 도쿄 트리오와 함께 신곡들을 녹음할 예정
- 이미 최소 앨범 3개 분량을 채울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양의 오리지널 곡을 써 둔 상태
- 현재 출판 등록된 곡만 100여 곡에 달할 정도로 꾸준히 창작을 이어오고 있음
교수 은퇴 이후의 삶
- 2023년경(인터뷰 시점 기준 2년 전), 27년간 재직했던 UC 어바인 교수직에서 은퇴
- 은퇴 후 연주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어, 현재 연간 35~40회의 공연을 소화하며 활발히 활동 중
주요 활동 거점
- 현재 LA와 도쿄를 오가며 활동하고 있음
2. 작곡 철학과 즉흥 연주의 결합
2.1 피아니스트의 관점과 즐거움
- 피아니스트 중심의 접근법 확립
- 음악을 쓸 때 무엇보다 피아니스트로서의 관점을 최우선으로 접근함
- 과거에는 쿼텟, 퀸텟 및 대규모 앙상블을 위한 곡을 작곡했으나, 현재는 철저히 자신을 위한 피아노 음악 작곡에 집중하고 있음
- 창작의 핵심 동기: 개인적 즐거움
- 작곡 과정에서 가장 먼저 고려하는 본질적인 질문은 “연주자인 내가 이 곡을 연주하는 것이 즐거운가"임
- 자신의 음악을 스스로 즐길 수 있는지에 대해 매우 ‘이기적인’ 태도를 유지하며 창작에 임하고 있음
- 재즈 뮤지션으로서의 정체성 투영
- 즉흥 연주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재즈 뮤지션으로서, 연주자 본인이 느끼는 즐거움이 작곡의 근간이 됨
2.2 즉흥 연주에서 출발하는 작곡
- 재즈 전통과의 차별화
- 헤드(주제)를 먼저 연주하고 그 코드 진행 위에서 솔로를 이어가는 기존의 관습적인 방식에서 탈피함
- 단순히 음악을 써놓고 “자, 이제 즉흥 연주를 해보자"라고 하는 접근법으로는 좋은 결과물을 내기 어렵다고 생각
- 즉흥 연주를 작곡의 출발점으로 설정
- 작곡을 시작할 때 “내가 어떤 종류의 즉흥 연주(솔로)를 하고 싶은가?"를 스스로에게 가장 먼저 질문함
- 원하는 솔로의 성격이나 질감을 먼저 정의하는 것이 작곡의 첫 번째 단계
- 즉흥 연주의 목적성에 기반한 설계
- 해당 즉흥 연주가 구체적으로 ‘무엇에 관한 것인지’를 사전에 명확히 인지해야 한다고 믿음
- 원하는 형태의 솔로로 자연스럽게 유도될 수 있는 작곡 구조를 역방향으로 설계함
- 작곡과 즉흥 연주의 유기적 통합
- 작곡과 즉흥 연주를 별개의 단계로 보지 않고, 하나의 완성된 흐름으로 통합함
- 이러한 ‘역설계’ 방식은 즉흥 연주자가 곡의 문맥에서 벗어나지 않고, 해당 곡의 본질적인 부분으로서 연주할 수 있게 돕는 가이드가 됨
- 철학적 확립 배경
- 이러한 역발상적 작곡 방식에 대한 깨달음은 1980년대 중반(약 40년 전)부터 시작되었음
- 현재까지 출판 등록된 약 100여 개의 작품들 중 상당수가 이러한 철학적 바탕 위에서 탄생함
2.3 곡과 솔로의 통합
- 단순 코드 진행 연주의 탈피
- 재즈의 전통적인 방식인 ‘정해진 코드 진행 위에서 솔로를 하는 것’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함
- 단순히 코드에 맞는 음들을 나열하는 방식은 연주자가 해당 곡이 아닌 ‘다른 어떤 곡’에서도 통용될 법한 일반적인 연주를 하게 만들 위험이 크다는 지적
- 곡에 특화된 가이드라인 구축
- 즉흥 연주가 곡과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, 연주자에게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이끌어줄 수 있는 ‘더 많은 요소’가 곡 안에 존재해야 한다고 믿음
- 이를 통해 즉흥 연주가 시작될 때, 그것이 반드시 ‘그 곡을 위한 솔로’처럼 들리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함
- 즉흥 연주의 정체성 확보
- 솔로가 곡의 구조와 완전히 통합되어, 감상자가 들었을 때 “이 솔로는 이 곡의 본질적인 일부분이다"라고 느낄 수 있도록 유기적인 연결성을 강조함
- 연주자가 곡의 문맥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독창적인 프레이즈를 구사하도록 작곡 단계에서부터 설계를 병행함
- 음악적 통찰의 확립 시기
- 아카기는 이러한 ‘곡과 솔로의 통합’에 대한 필요성을 1980년대 중반에 깨달았음
- 이 깨달음 이후, 그는 단순히 좋은 멜로디를 쓰는 것을 넘어 즉흥 연주와 작곡이 서로를 보완하고 정의하는 독자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해왔음
2.4 프리 재즈에서 얻은 교훈
- 프리 재즈 운동의 시대적 영향
- 아카기가 10대였던 1960년대와 70년대는 프리 재즈 운동이 활발했던 시기였음
- 당시 세대는 찰리 파커의 비밥부터 마일스 데이비스의 퓨전, 그리고 프리 재즈까지 모든 장르를 동시에 섭취하며 성장해야 했음
- 그는 자신의 앨범에 자주 기록하지는 않았으나, 커리어 전반에 걸쳐 수많은 프리 임프로비제이션(Free Improvisation)을 수행해왔음
- 자유와 무작위성의 구분
- 프리 재즈를 통해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‘프리 임프로비제이션일수록 작곡가처럼 생각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’는 점임
- 연주자가 작곡가적 관점을 견지하지 않으면, 연주는 음악적 질서가 없는 단순한 ‘무작위’ 상태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고 경고함
- 매개변수 설정과 규율
- 프리 임프로비제이션에서 음악적 가치를 확보하기 위해 연주자 스스로 규율을 가져야 함을 강조함
- 이를 위해 연주 전이나 과정 중에 스스로 매개변수를 설정하여 연주의 범위를 제한하는 법을 배웠음
- 그는 이러한 접근법이 모든 프리 재즈 연주자에게 강요되는 것은 아니나, 자신의 음악적 선택은 언제나 ‘작곡 단계에서부터 규율을 가져오는 것’이었음을 밝힘
자기 절제의 역설
- 즉흥 연주를 구성하는 구체적인 ‘빌딩 블록’을 활용하여 자신을 제한함
- 리듬의 핵: 일관된 리듬적 동기 사용
- 음정 그룹 및 인터벌: 특정 음의 집합이나 간격 설정
- 특정 음계: 특정 스케일 내에서의 탐구
- 아카기는 이러한 규율을 단순히 연주 현장이 아닌 ‘작곡 단계’에서부터 미리 설정하고 가져오는 방식을 선택함
- 아카기에게 프리 임프로비제이션이란 “스스로를 억압하지 않으면서도 얼마나 질서 있게 자신을 제한할 수 있는가"를 시험하는 끊임없는 전투와 같음
- 이는 즉흥 연주가 단순히 코드 진행 위에서 노는 것이 아니라, 작곡된 곡의 본질적인 일부처럼 들리게 하기 위함임
- 이러한 자기 절제의 교훈은 약 20~30년 전에 확립되었으며, 당시 얻은 깨달음은 현재 그가 쓰고 있는 모든 음악의 구조와 창작 방식에 근본적인 정보와 영감을 제공하고 있음
3. 유년 시절과 재즈 입문
3.1 미국 성장 배경 및 일본 귀국
- 1958-1965년 (5-12세): 부친의 박사 학위 취득을 위해 온 가족이 미국 클리블랜드에서 7년간 거주함
- 음악적 자양분 흡수: 거주 지역의 환경적 영향으로 재즈, R&B, 모타운 사운드를 일상적으로 접하며 자연스럽게 음악적 토대를 형성함
- 1965년: 12세의 나이로 일본에 귀국함
3.2 현대 음악 심취와 재즈로의 전향
- 1968년경, 15세의 나이에 바르톡(Bartók)을 비롯한 현대 클래식 음악에 깊이 매료됨
- 재즈 입문의 계기: “현대 음악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재즈를 알아야 한다"는 스승의 조언에 따라 재즈를 공부하기 시작함
- 일본 지방 도시의 레코드점에서 구매한 버드 파웰의 ‘피아노 트리오’ 앨범을 통해 재즈에 완전히 매료됨
- 미국 거주 당시 들었던 친숙한 사운드에 고도의 정교함과 현대적 감각, 강렬한 스윙이 결합된 연주에 압도당함
- 1970년대 초반, 일본 북부의 작은 마을에서 음반을 통해 재즈 피아노의 거장들을 독학함
- 버드 파웰 이후 빌 에반스, 맥코이 타이너, 칙 코리아, 폴 블레이, 허비 행콕, 키스 자렛, 세실 테일러 등을 차례로 연구함
- 특히 당시 20~30대였던 재즈 피아노의 혁신가들의 음악을 집중적으로 탐구함
- 1975년, UC 산타바바라 대학원 진학을 위해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며 본격적인 전문 음악인의 길을 걷기 시작함
3.3 첫 정식 커리어: 아이어토 모레이라 & 플로라 푸림 (1978년~1985년)
- 미국 복귀 및 기회: 1975년 대학원 진학을 위해 미국 산타바바라로 돌아왔을 당시, 브라질 음악의 거장 아이어토 모레이라(Airto Moreira)와 플로라 푸림(Flora Purim)이 ‘Matrix IX’이라는 밴드와 투어를 준비 중이었음
- 합류 경로: 해당 밴드의 베이시스트였던 친구의 추천으로 키보드 연주자 오디션 기회를 얻어 즉시 발탁됨
- 활동 기간: 이들과 7년간 함께 활동했으며, 이는 케이 아카기의 인생에서 첫 번째 고정적인 프로 연주자 직업이었음
4. 퓨전 기타리스트들과의 협업
4.1 앨런 홀즈워스(Allan Holdsworth)와의 협업
4.1.1 밴드 합류 배경과 빌리 차일즈의 대타
- 밴드 합류 시기 및 계기
- 1986년경 기타리스트 앨런 홀즈워스로부터 예기치 못한 연락을 받고 그의 밴드에 합류하게 됨
- 당시 홀즈워스와 긴밀하게 작업하던 피아니스트 빌리 차일즈(Billy Childs)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예정된 로드 투어에 참여할 수 없게 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됨
- 빌리 차일즈와의 연결 고리
- 빌리 차일즈는 1986년에 발매된 홀즈워스의 앨범《Atavachron》에서 Funnels에 참여하며 협업 중이었음
- 투어 공백이 발생하자 빌리 차일즈를 대신할 적임자로 케이 아카기의 이름이 거론되었으며, 이를 통해 홀즈워스와의 첫 접점이 형성됨
- 추천 경로의 불확실성
- 아카기 본인은 홀즈워스가 구체적으로 어떤 경로를 통해 자신의 연주를 접했는지, 혹은 누가 자신을 강력하게 추천했는지에 대해서는 현재까지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
- 다만, 빌리 차일즈가 투어를 갈 수 없는 상황에서 홀즈워스 측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는 점만은 분명한 사실로 기억함
- 음악적 도전의 시작
- 이 합류는 단순히 대타 연주자를 넘어, 재즈 화성의 일반적인 문법을 파괴하는 홀즈워스의 독창적인 음악 세계에 아카기가 진입하게 된 중대한 전환점이 됨
- 이후 아카기는 홀즈워스의 자택을 방문하여 그의 난해한 곡들을 일대일로 전수받는 혹독한 준비 과정을 거치게 됨
4.1.2 홀즈워스 자택 레슨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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앨런 홀즈워스의 집을 직접 방문하여 각 곡을 구체적으로 전수받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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홀즈워스가 기타로 직접 연주하는 모든 곡을 옆에서 지켜보며 학습하는 도제식 과정을 거침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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기존 재즈 화성 체계의 거부
- 홀즈워스의 음악은 ‘E minor 7’과 같은 전형적인 재즈 코드 체계로 설명되거나 분류되지 않았음
- 일반적인 재즈 문법으로는 그의 곡을 해석하거나 연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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기타 보이싱의 물리적 채보와 추출
- 홀즈워스가 기타 지판에서 짚는 모든 독특한 보이싱을 일일이 시각적으로 확인하고 받아 적음
- 단순히 코드를 적는 것이 아니라, 기타의 화성적 질감을 피아노로 옮기기 위해 자신만의 독자적인 코드 기호를 새롭게 추출해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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화성 구조의 심층 연구
- 홀즈워스의 음악이 작동하는 원리를 근본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그의 복잡한 화성 구조 자체를 집요하게 파고듦
- 이 과정 없이는 그의 음악을 제대로 시작조차 할 수 없었음을 고백함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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릭 중심 연주의 탈피
- 특정 코드 진행에 맞춰 준비된 전형적인 재즈 구절을 연주하는 방식을 완전히 버려야 했음
- 철저하게 홀즈워스의 기타 보이싱에 기반하여 연주해야 한다는 점을 음악적 원칙으로 삼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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약 40년 전의 깨달음이 준 영향
- 당시의 고된 학습 과정은 아카기가 복잡한 현대 음악의 다조성 구조를 파악하는 결정적인 훈련이 됨
- 이 경험은 이후 그가 마일스 데이비스 등 다른 거장들과 협업할 때 화성적 깊이를 더하는 밑거름이 됨
4.1.3 프랑크푸르트 공연 일화
- 유일한 영상 기록의 가치
- 프랑크푸르트 공연은 앨런 홀즈워스와 케이 아카기가 함께 무대에 선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영상 기록물임
- 이 영상은 현재까지도 많은 재즈 팬들과 기타 연주자들에게 홀즈워스 음악의 정수를 보여주는 귀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음
- 합류 후 첫 번째 공연 (1986년)
- 대중에게는 완성도 높은 공연으로 비춰지지만, 사실 이 무대는 케이 아카기가 홀즈워스 밴드에 합류한 뒤 치른 첫 번째 공연이었음
- 빌리 차일즈의 대타로 급히 투입된 직후였기에 팀의 합을 완벽히 맞추기 전 무대에 오르게 된 상황이었음
- 극한의 준비 과정과 리허설 부족
- 공연 전 앨런 홀즈워스와 함께한 리허설 횟수는 단 3~4회에 불과했음
- 홀즈워스의 곡들은 일반적인 재즈 화성으로 해석되지 않는 독자적인 체계를 가지고 있었으므로, 단 몇 번의 리허설만으로 이를 완벽히 소화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이었음
- 무대 위에서의 사투
- 아카기는 당시 공연 중의 심경을 “모든 음악적 상황을 이해하고 맥락을 파악하기 위해 미친 듯이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”고 회상함
- 겉으로는 유려하게 연주하는 것처럼 보였을지라도, 속으로는 홀즈워스가 전수해 준 복잡한 보이싱과 다조성 구조를 실시간으로 처리해내느라 엄청난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음
- 당시 리듬 섹션을 맡았던 베이시스트 지미 존슨(Jimmy Johnson)과 드러머 게리 허즈번드(Gary Husband)의 압도적인 기량이 큰 도움이 됨
- 아카기는 이들을 ‘괴물들’이라고 지칭하며, 자신이 음악적 방향을 잃지 않도록 든든하게 받쳐준 이들의 연주 덕분에 첫 공연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표함
- 이 프랑크푸르트 공연은 아카기가 현대 재즈 기타의 거장인 홀즈워스의 세계관에 발을 들이는 가장 강렬한 신고식이었으며, 이후 그의 커리어 전반에 걸쳐 화성적 깊이를 더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됨
4.2 LA 기반 퓨전 사이드맨 활동
- 활동 기간 및 배경 (1986년~1992년)
-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로스앤젤레스를 거점으로 활발히 활동함
- 앨런 홀즈워스 이외에도 알 디 메올라(Al Di Meola), 프랭크 갬발리(Frank Gambale) 등 당대 최고의 퓨전 기타리스트들과 장기적인 협업 관계를 유지함
- 협업의 지속성과 음악적 유대
- 프랭크 갬발리와는 특히 오랜 기간 협업하며 수많은 앨범에 참여함
- 당시 리더들의 연주 스타일(예: 갬발리의 레가토 주법)과 조화를 이루면서도, 키보드로서 곡의 구조를 탄탄하게 지탱하고 독창적인 솔로를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함
- 2025년 시점에서의 회고
- 이 시기의 왕성한 사이드맨 활동은 아카기에게 매우 중요한 수련기였으며, 당시 쌓은 기술적·화성적 경험은 현재까지도 그의 음악적 자산이 되고 있음
4.3 퓨전 신에서 주목받은 이유
- 멀티 키보드 연주자로서의 차별성
- 당시 밴드 리더들은 전통적인 피아니스트보다는 다양한 신디사이저와 전자 장비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연주자를 선호했음
- 아카기는 해당 음악들을 구현하기 위한 충분한 장비를 갖추고 있었으며, 이를 기술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역량이 있었음
- 동시에 정통 재즈 배경을 보유하고 있었기에, 화성적 복잡성과 음악적 세련미를 곡에 더할 수 있다는 점이 리더들에게 매력적으로 작용함
- 관악기 스타일의 솔로 프레이징
- 아카기는 자신의 솔로 스타일이 피아니스트보다는 마일스 데이비스나 존 콜트레인 같은 관악기 연주자의 영향을 더 크게 받았다고 밝힘
- 자신과 같은 세대의 재즈 뮤지션들에게 존 콜트레인과 마일스 데이비스는 가장 거대한 두 가지 음악적 뿌리였다고 강조함
- 1980년대 중반까지의 재즈 역사는 연주자가 이 두 거장 중 누구를 주요 영향력으로 선택했느냐에 따라 그 성격이 규정될 정도였다고 회고함
- 존 콜트레인의 선형적 프레이징과 마일스 데이비스 특유의 여유롭고 반음계적인 펜타토닉 구조를 결합하여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함
- 당시 습득한 현대적 재즈 어법을 신디사이저 연주에 이식하는 독특한 시도를 함
4.4 조 패럴(Joe Farrell) 퀸텟과 ‘뉴욕 스타일’
- 음악 감독으로서의 활동
- 1980년대 중반, 색소폰의 거장 조 패럴의 밴드에서 수년간 음악 감독으로 재직하며 밴드의 음악적 방향성을 진두지휘함
- 당시 밴드는 조 패럴(색소폰), 톰 브렉틀라인(Tom Brechtlein, 드럼), 케이 아카기(피아노/키보드)를 중심으로 한 쿼텟 구성이었음
- 주요 협업 동료 및 인적 네트워크
- 드러머 톰 브렉틀라인과는 알 디 메올라 밴드에서 함께 활동하며 깊은 유대감을 쌓았으며, 이후 바니 브루넬(Bunny Brunel), 앨런 비주티(Allen Vizzutti)와 함께 별도의 그룹을 결성하기도 함
- 초기 베이시스트는 존 패티투치(John Patitucci)였으나, 그가 바빠진 이후 밥 해리슨(Bob Harrison)이 합류하여 조 패럴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함께 활동함
- 현대적 ‘뉴욕 스타일’의 체득
- 조 패럴 그룹에서의 활동을 통해 당시 재즈계의 최첨단이었던 ‘현대적인 뉴욕 스타일’ 연주법을 깊이 있게 학습하고 체득함
- 뉴욕 스타일 특유의 정교한 화성적 접근과 리듬적 긴장감을 자신의 연주 기반으로 흡수함
- 신디사이저로의 정보 이식
- 조 패럴 밴드에서 배운 정통적이고 현대적인 뉴욕 스타일의 연주 정보를 신디사이저 연주에 적극적으로 도입함
- 당시(1980년대 후반) 신디사이저로 이러한 현대적 재즈 어법을 구현하는 연주자는 거의 없었으며, 이는 아카기가 퓨전 기타 거장들의 부름을 받는 독보적인 경쟁력이 됨
5. 마일스 데이비스와의 협업
5.1 마일스 데이비스 밴드 합류 과정 (약 37~38년 전, 1980년대 후반)
- 극적인 추천 경로: 당시 알 디 메올라의 로드 매니저와 마일스 데이비스의 로드 매니저가 친구 사이였음
- 합류 배경: 마일스의 키보드 연주자였던 아담 홀츠먼(Adam Holtzman)과 조이 디프란체스코(Joey DeFrancesco)가 동시에 팀을 떠나게 되면서 공석이 발생함
- 최초의 망설임: 뉴욕 에이전시로부터 연락을 받았을 때, 아카기는 이미 3년간 쉴 틈 없이 투어를 소화한 상태였기에 자신의 음악을 개발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즉시 수락하지 않았음
- 결정과 발탁: “마일스의 부름을 거절할 수는 없다"고 판단하여 카세트 데모 테이프를 보냈고, 이틀 뒤 마일스로부터 직접 합격 통보를 받음
- 첫 공연: 뉴욕에서 일주일간 리허설을 마친 뒤,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마일스 데이비스 밴드 멤버로서의 첫 공연을 치름
5.2 밴드 분위기와 마일스의 성격
- 부족적 분위기: 마일스 밴드는 마치 ‘마을’이나 ‘부족’과 같아서, 신참이 들어오면 기존 멤버들이 그를 진정한 동료로 인정할 때까지 일정 기간 거리를 두는 독특한 문화가 있었음
- 긴장감의 연속: 마일스는 매우 기질적이고 직설적이었기에, 2년의 활동 기간은 아카기 인생에서 가장 신경이 곤두서는 경험이었음
- 뜻밖의 친절함: 대외적인 명성과 달리, 아카기가 곁에서 지켜본 마일스는 그에게 매우 친절하고 지지적이었으며, 많은 칭찬을 아끼지 않는 따뜻한 리더였음
5.3 마일스 데이비스의 음악적 가르침
- 실전 중심의 직관적 교육
- 정형화된 강의가 아닌, 실제 연주 상황이나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‘지혜의 진주’와 같은 짧고 강렬한 조언을 건넸음
- 밴드 리더로서 멤버들의 모든 노트를 세밀하게 모니터링하며, 연주자의 화성적 선택이 의도적인 것인지 즉각적으로 파악하고 피드백을 주었음
- 역사적 맥락과의 연결
- 아카기의 연주를 듣고 “칙 코리아처럼 연주한다"고 평하는 등, 자신의 밴드를 거쳐 간 역대 거장들(빌 에반스, 허비 행콕, 키스 자렛 등)의 음악적 유산과 현재 연주자의 스타일을 실시간으로 대조하며 가르침을 주었음
일화 1. 파리에서의 새벽 4시 전화: “따라가지 마라”
프랑스 파리 투어 중이었던 어느 날 새벽 4시, 호텔에서 깊이 잠들어 있던 아카기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 왔습니다. 전화를 받은 아카기에게 마일스는 안부 인사도 없이 곧바로 본론을 꺼냈습니다. 마일스는 쉰 목소리로 “이봐, 누군가의 뒤에서 반주를 할 때 그들을 그대로 따라가지 마. 그러면 음악을 망치게 될 거야. 안녕.“이라는 말만 남기고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습니다. 아카기는 이 짧은 새벽의 통화 이후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아 다시 잠들 수 없었으며, 이 조언을 통해 솔로 연주자의 흐름에 단순히 매몰되지 않고 반주자로서 독창적인 공간과 긴장감을 유지해야 한다는 음악적 본질을 깨달았습니다
일화 2. ‘Tutu’의 화성적 충돌: “나도 그렇게 하지”
마일스의 대표곡 중 하나인 ‘Tutu’를 공연하던 중, 아카기는 의도적으로 G minor 코드 위에서 화성적으로 어긋나는 B 내추럴 음을 연주했습니다. 마일스는 공연 중에는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았으나, 다음 날 공항에서 아카기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“왜 G minor에서 B 음을 쳤나?“라고 날카롭게 질문했습니다. 아카기가 “대장, 당신에게 배운 것입니다.“라고 대답하자, 마일스는 잠시 그를 바라보더니 “그래, 나도 그렇게 하지.“라고 말하며 웃으며 떠나갔습니다. 이 일화는 마일스가 밴드 멤버들이 내는 모든 음을 얼마나 세밀하게 듣고 있었는지, 그리고 연주자의 의도된 창의적 도전을 어떻게 존중했는지를 보여줍니다
5.4 마일스의 현대적 사운드
- 전통적 재즈 사운드의 의도적 배제
- 마일스는 자신의 밴드가 연주하는 헤드(주제), 멜로디, 리듬이 전형적인 재즈처럼 들리는 것을 원하지 않았음
- 그는 당시 가장 현대적인 음악적 흐름을 밴드에 이식하고자 노력함
- 프린스(Prince)와 미니애폴리스 사운드의 영향
- 당시 마일스가 가장 좋아하고 깊게 영감을 받았던 아티스트는 프린스였으며, 특히 그의 음악적 구성 방식과 리듬 개념을 높게 평가함
- 잼 앤 루이스(Jam & Lewis)가 프로듀싱한 자넷 잭슨의 《Rhythm Nation》과 같은 매우 타이트하고 정교한 ‘어번 사운드’를 지향점으로 삼음
- 고고 비트의 핵심적 역할
- 워싱턴 D.C.에서 ‘고고 비트’를 창시한 드러머 리키 웰먼(Ricky Wellman)의 연주를 밴드 사운드의 중심축으로 설정함
- 이를 통해 밴드는 현대적인 팝과 펑크의 견고한 리듬 구조를 갖추게 됨
- 자유와 규율의 역설적 공존
- 완전한 규율: 앙상블 연주 시에는 멤버들이 완벽하게 합을 맞추고, 신디사이저 패치나 사운드 설정 하나하나까지 매우 타이트하게 구성할 것을 요구함
- 완전한 자유: 반면 개인의 창의성이 발휘되는 솔로 섹션에서는 연주자가 어떤 참조점을 쓰든, 어떻게 구조를 짜든 간섭하지 않고 온전한 자유를 부여함
5.5 디지 길레스피와 마일스의 인간적 면모
- 마일스 데이비스의 반전되는 성격 (약 35년 전, 1990년경)
- 대외적 이미지와 달리, 아카기가 가까이에서 본 마일스는 매우 친절하고 인간적인 면모를 지닌 인물이었음
일화 1. 디지 길레스피가 전수한 릭
마일스가 저를 자신의 호텔 방으로 불렀던 적이 있습니다. 제 기억에 독일인가 어딘가에 있었을 때였는데, 저는 그가 저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야단을 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. 하지만 아니었습니다. 그는 그저 함께 어울리며 대화를 나누고 싶어 했을 뿐이었습니다. 그는 자신의 나팔(트럼펫)을 집어 들고 연주하더니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. “이건 내가 19살 때 디지(디지 길레스피)가 가르쳐준 릭이야. 봐, 나 아직도 이걸 연주할 수 있다고.”
일화 2. 두 거장의 역사적인 뒷모습
그 일이 있고 몇 주 후, 우리는 어느 야외 재즈 페스티벌에서 공연하고 있었습니다. 제가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, 마일스와 디지가 팔짱을 낀 채 천천히 걸어가며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. 저는 그 장면을 사진으로 남길 수 있었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. 마일스에게 디지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친구이자 동료였으며, 동시에 선생님이었기 때문입니다. 마일스가 자신을 진정으로 형성시켜 준 사람(디지)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그 한 장면을 통해 저는 그들의 유대감을 아주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.
- 음악적 뿌리에 대한 깨달음
- 전설적인 거장인 마일스조차도 누군가(디지 길레스피)로부터 배우고 형성된 존재라는 사실은 아카기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음
- 아카기는 마일스가 마지막까지 디지를 존경하고 예우하는 모습을 보며, 음악적 유산이 어떻게 세대를 이어 전달되는지를 목격함
6. 리더 활동과 현재
6.1 리더 데뷔를 늦춘 이유 (에디 해리스의 조언)
- 시기 및 배경: 20대 중반 무렵 색소폰 연주자 에디 해리스(Eddie Harris)와 오랜 기간 협업하며 첫 리더 녹음을 고민함
- 에디 해리스의 가르침: “너무 일찍 리더가 되면 사이드맨으로서 거장들에게 배울 기회를 놓치게 되고, 더 이상 연주 요청이 오지 않아 발전이 멈출 수 있다"는 충고를 받음
- 결정: 실력 있는 연주자들이 너무 일찍 리더가 되어 기초적인 훈련 과정을 놓치는 사례를 목격하고, 조언을 받아들여 데뷔를 의도적으로 늦춤
6.2 첫 리더 앨범 《Playroom》 (1992)
- 40세에 이루어진 리더 데뷔
- 1991년: 에디 해리스의 조언을 충실히 따른 끝에, 본인이 스스로 준비되었다고 느낀 40세가 되어서야 첫 리더 앨범 《Playroom》을 발표함
- 음악적 지향점 및 구성
- 1991년 (40세): 첫 리더 앨범 《Playroom》은 아카기가 가진 두 가지 음악적 뿌리를 결합하려는 시도였음
- 장르의 융합
- 어쿠스틱 퓨전: 현대적인 실험성과 복합적인 사운드 추구
- 정통 재즈 전통: 재즈의 역사적 토대와 즉흥 연주 기법 유지
- 참여 뮤지션과의 유대
- 드럼: 알 디 메올라 밴드 및 조 패럴 퀸텟에서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톰 브렉틀라인이 참여함
- 베이스: 조 패럴 그룹에서 함께 활동했던 존 패티투치와 밥 해리슨 등이 참여하여 연주의 완성도를 높임
- 이들은 당시 아카기의 핵심 협업 동료들이었음
- 역사적 맥락
- 이 앨범은 아카기가 마일스 데이비스 밴드 활동 직후 발표한 결과물로, 사이드맨에서 리더로 변모하는 중요한 분기점이 됨
6.3 퓨전과 정통 재즈에 대한 인식
- 장르 간 경계의 부재 (1970~80년대)
- 아카기가 20~30대였던 당시에는 퓨전과 정통 재즈 사이에 현재와 같은 뚜렷한 구분이 존재하지 않았음
- 당시 실력 있는 연주자들은 두 장르를 모두 훌륭하게 소화했으며, 뛰어난 퓨전 연주자는 본질적으로 강력한 정통 재즈 연주자이기도 했음
- 대표적인 인물로 칙 코리아(Chick Corea), 허비 행콕(Herbie Hancock), 조 자비눌(Joe Zawinul) 등을 꼽음
- 퓨전의 정의와 본질
- 퓨전을 정통 재즈 연주의 ‘자연스러운 확장’으로 인식함
- 기존의 재즈 연주 방식에 록, 펑크, 일렉트릭 음악 등 당시 새롭게 등장한 음악적 영향들이 자연스럽게 결합된 형태임
- 마일스 데이비스의 음악적 연속성
- 마일스 데이비스가 《Bitches Brew》나 《In a Silent Way》 같은 혁신적인 앨범을 발표할 때, 그 스스로는 ‘재즈가 아닌 새로운 장르’를 만든다고 생각하지 않았음
- 마일스의 음악적 도약은 결코 단절되지 않았으며, 전통적인 연주 방식(예: ‘Stella by Starlight’)에서 현대적인 사운드에 이르기까지 그 연속성이 유지되었다고 평가함
- 장르 분화의 배경
- 두 캠프 사이의 대립이나 엄격한 구분은 퓨전이 하나의 독립된 장르로 완전히 고착화된 이후(아카기 세대보다 후기)에야 발생한 현상임
- 아카기와 동시대 음악가들은 이러한 장르적 구분에 구애받지 않고 음악적 영감을 자유롭게 수용했음
6.4 찰리 헤이든(Charlie Haden)과 공간의 미학
- 산타바바라에서의 역사적 트리오 공연
- 아카기는 과거 산타바바라에서 베이시스트 찰리 헤이든, 드러머 아이어토 모레이라와 함께 피아노 트리오 공연을 가졌으며, 이를 생애 가장 경이로운 음악적 경험 중 하나로 기억함
- 당시 공연에서는 재즈 스탠다드 곡들과 아카기의 자작곡들을 함께 연주함
- 아이어토 모레이라의 프리 임프로비제이션 능력
- 아이어토 모레이라가 브라질에서 에르메투 파스코아우(Hermeto Pascoal) 등과 활동하며 발전시킨 뛰어난 프리 임프로비제이션 능력이 트리오 사운드의 핵심적인 토대가 됨
- 찰리 헤이든의 ‘부드러운 강제력’
- 오넷 콜먼(Ornette Coleman) 및 키스 자렛(Keith Jarrett)과 활동했던 헤이든은 연주자에게 특정 방식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, 자신의 독보적인 베이스 라인으로 연주의 방향을 바꾸는 힘을 가졌음
- 그는 동료 연주자가 평소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연주하도록 “매우 부드럽게” 유도하는 인물이었음
- 아카기는 이 공연 도중 “기존의 내 소리가 아니라 키스 자렛이나 폴 블레이(Paul Bley)처럼 연주하고 있는 나 자신"을 발견하며 헤이든의 압도적인 영향력을 실감함
- 공간의 미학과 존재감
- 아카기는 헤이든의 연주에서 가장 인상적인 요소로 ‘공간의 활용’을 꼽음
- 자유로운 연주와 스윙하는 연주 사이에서도 공간을 유지하는 그의 능력은 경이로웠으며, 단 한 음만 연주해도 그가 찰리 헤이든임을 즉각 알 수 있게 하는 강력한 음악적 존재감을 보여줌
- 인간적 면모와 스승으로서의 가치
- 아카기는 찰리 헤이든을 매우 따뜻하고 공감 능력이 뛰어난 인물이자, 연주자에게 깊은 영감을 주는 훌륭한 스승으로 평가함
- 그와 함께한 짧은 협업 경험은 아카기가 음악 내에서 공간과 긴장감을 다루는 방식을 재정립하는 데 중요한 이정표가 됨
6.5 교육자로서의 경력과 은퇴
- UC 어바인 교수직: 캘리포니아 대학교 어바인 분교에서 27년 동안 음악 교수로 재직함
- 2023년에 교수직에서 은퇴함
6.6 현재 트리오와 향후 계획
- LA 트리오: 베이시스트 다렉 올스, 드러머 제이슨 하넬과 함께 약 35~4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호흡을 맞춰오고 있음
- 도쿄 트리오 및 신보 계획: 최근 몇 년간 도쿄에서 새로운 트리오를 구성하여 정기적으로 연주 활동을 지속하고 있으며, 이 트리오와 함께 작업한 신규 앨범을 내년인 2026년 중반에 출시할 예정임
- 창작 현황: 현재 최소 3개의 앨범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양의 자작곡을 보유하고 있으며, 지속적으로 작곡을 이어가고 있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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